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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든 책들/IT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

by exdus3156 2023. 11. 9.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은 게임 업계가 발전하면서 게임을 만들고, 게임 개발 방식이 정형화되고, 게임이 큰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이 될 동안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재미와 게임의 본질을 탐구한 책이다. 게임을 깊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재미와 게임 디자인의 예술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게임 플레이, 게임의 재미를 탐구하는 게임 디자인, 게임 기획, 게임 개발 등 게임 업계 종사자와 ‘재미’를 창조하는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저자
라프 코스터
출판
길벗
출판일
2017.03.25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은 게임 개발자인 저자가 '과연 게임이란 무엇이고, 왜 재밌는가?'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있어 아주 큰 전환점이 되었던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왜 개발자가 되려고 노력하는지 그 동기를 찾았기 때문이다.

 

내가 미래에 개발하고 싶은 꿈에 대한 실마리가 여기 담겨 있다.

 

 

1. 흥미로운 내용들

1-1. 게임이 반드시 쓸모 있어야 할까?

이 책은 게임 개발자에게 있어 거의 필수적인 책으로 손 꼽히며, 롤 프로게이머 페이커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게임 개발자와 게이머들에게 유명한 책이다. 하지만 모든 게임 개발자가 이 책을 좋아하진 않는데, 경우에 따라선 꽤 불편한 내용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게임의 쓸모에 대해 논한다. 그러나 "게임의 쓸모"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게임 개발자들에게 다소 논란거리가 되는 듯하다. 게임의 예술성 논란과도 맥락이 비슷한데,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을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종합 예술의 반열에 오르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탐탁치 않아 하는 개발자도 많다. 게임의 쓸모를 논하는 이 책도 마찬가지 비판을 받는다. 게임의 예술성, 혹은 게임의 쓸모를 논하는 행위의 배후에 이미 "게임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란 전제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게임을 둘러싼 모든 문제는 자기 극복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게임은 처음부터 문제라고 바라보는 관점이다. 게임은 오락물이고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따라서 오락성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지 굳이 내부에 숨은 가치를 억지로 발굴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오락물이라고 해서 게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거둘 필요는 없다. 물론 게임의 사회적 위상을 끌어올리려 억지를 부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모든 탐구가 사회적 위상을 올리려는 억지는 아니다. 나는 순수한 호기심에 이 책을 집어 읽었다. 그냥 궁금했다. 도대체 게임은 왜 재밌을까? 혹시 모르지 않는가. 정말로 게임의 배후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어떤 진리가 숨어 있을지..

 

1-2. 인지 과학 이야기

인지 과학 관점에서 쓴 책들을 몇 권 읽은 바 있다. 지금 내 서재에도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라는 인지 과학 책이 꽂혀 있다. 내용들이 아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뇌의 작동 원리를 탐구한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패턴 인식 장치이며, 세계에 대한 추상적인 모델을 만들어 세상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 계획을 세운다. 만약 모델이 틀린 것으로 판명나면 모델의 패턴을 고친다. 인간은 이렇게 학습한다.

 

이 과정은 본능적이다. 멈출 수 없다. 인간은 눈 앞에 있는 모든 정보를 최대한 추론해서 그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다. 인간은 혼돈을 싫어하고 규칙을 좋아한다. 물론 이 때문에 인간의 악습 중 하나인 편견이 자리잡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적으로 형식을 원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의미 해석에 실패한 경우 우리는 그 정보를 소음으로 처리하며, 때에 따라선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어 못하는 사람에게 영어 소리는 소음이다. 분명히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음에도 1초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하기 힘들다. 소음은 듣기 싫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 아무리 영어를 들었다 한들, 이해하지 못하므로 우리는 더 이상 듣기를 지속할 수 없다. 금방 피로해진다.

 

머릿속에는 세상에 대한 관념적 모델이 있다.

 

세상에 대한 모델, 개념을 구축하는 행동은 본능적이면서 계층적이다. 어떤 모델은 지식이 필요하다. 투자를 하기 위해 기업을 평가하는 수학 방정식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며 비직관적이다.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모델은 선천적이다. 축구공이 눈 앞에 날아오면 우리는 생각할 여지도 없이 바로 피해버린다. 이런 행동에도 모델이 필요하지만, 이 모델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학습을 지속할 필요는 없다.

 

모델은 위와 같은 양 극단 사이에 스펙트럼처럼 널려 있다. 악기 연주는 중간 정도의 스펙트럼에 위치한다. 기타를 연주하기 위해 코드를 익히는 것은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지만, 음악에 대한 선천적인 직관에 의존하는 면도 많다. 적어도 경제학의 복잡한 금융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수준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나저나 이것이 게임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1-3. 게임은 학습이다.

여기서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이 나온다. 

 

게임은 세상의 패턴을 상징화해서 보여주는 장치다.

 

학부모들이 들으면 충격을 받을 내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의 화려한 겉 모습을 제거하고 남은 게임 시스템을 상상해보자.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을 개발할 때 보통 화려한 그래픽을 제거한 순수한 게임의 형태를 묘사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게임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때 게임은 그야말로 상징화된 패턴의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특정 게임을 하면서 머리속에 구축하는 모델 그 자체다.

 

이 말을 잘못 받아들이면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만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게임이라고 해서 꼭 현실 속의 어떤 모습을 추상화할 필요는 없다. 바둑이 현실 속의 전쟁을 묘사했다고 보긴 힘들다. 게임이 현실을 흉내낸 것이 아니다. 게임은 자체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단지 인간이 그것을 인식할 뿐이다. 다만 인간이 현실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인간이 게임을 대한다는 것이다.

 

물론 문명 개발자로 유명한 시드 마이어가 말했듯이, 현실은 이미 게임을 보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득하다. 시드 마이어는 게임 개발자라면 재밌는 게임을 연구하지 말고, 바로 우리 현실 세상 속에서 재밌고 흥미로운 선택을 발견하라고 가르쳤다. 게임 개발자가 할 일은 바로 그 "흥미로운 선택"을 인지적으로 쉽게 만들어 주는 것이 게임이라고 했다.

 

즉, 게임은 뇌가 씹어먹기 좋게 농축한 청크(Chunk)다. 게임은 추상과 상징으로 가득하다. 게임은 바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내부 모델을 묘사한 것이다. 물론 현실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묘사한 것이다. 그것에 방해되는 다른 모든 요소는 제거된다. 굳이 따지자면 현실과 게임이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5

 

시드 마이어의 문명5는 온갖 그래픽과 화려한 동작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현실의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현실처럼 보이지만 사실 문명5는 상징으로 가득하다. 땅을 육각형 타일로 구분하고 각 타일은 각각 산, 숲, 평지, 해안, .. 등으로 구분된다. 현실의 수많은 목재 종류들은 "목재"라는 단순한 상징 하나로 축약된다. 현실 속의 수많은 먹거리들은 "식량"이라는 단순한 상징 하나로 축약된다. 모두 게임 시스템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한 것이다.

 

 

바둑도 마찬가지다. 바둑이 어떤 현실을 묘사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둑은 그 자체의 시스템이 있으며, 땅을 많이 먹는다는 직관적인 목표를 제외하고는 현실과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다. 그러나 바둑은 그 자체로 규칙과 논리를 갖춘 모델이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5든, 바둑이든, 모든 게임은 시스템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패턴을 인식하는 것이다. 게임은 패턴을 학습해 시스템을 통달하는 것이다. 라프 코스터는 영원히 지속되는 게임은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재밌게 틱택토를 즐기면서 어느 순간 그 게임을 즐기지 않는 것은 바로 틱택토의 모든 시스템과 패턴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틱택토에 숨은 패턴을 통달하는 순간, 그래서 게임의 모든 과정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부 풀이하는 순간, 게임은 자신의 가치를 전부 소모한 것이다.

 

게임이 재밌는 이유는 학습이 생존에 중요하므로 우리 뇌가 그 순간에 기쁨이라는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게임은 심리적으로 학습 기제다. 충격적인 결론이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게임은 특히 공부의 대척점으로 분류되어 만악의 근원으로 오해를 받는다. 그런데 게임이 바로 그 공부의 기제라니! 놀라운 통찰이다.

 

1-4. 학습자가 진정 원하는 것.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학습이 재밌을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뇌의 학습 욕구는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간이 항상 새롭고 자극적인 정보만을 원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개인에게 최적화된 알고리즘과 유튜브 쇼츠 및 SNS 글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말을 믿지 않는다. 인간은 새로운 자극을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싫어한다. 낯선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학습 욕구에 반하기 때문이다. 학습의 쾌감은 알고 싶은 것에 대해 통달했다는 쾌감이다. 그래서 알고리즘에 의해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이다. 만약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패턴(편견)에 부합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추천해준다면 우리는 불쾌하다.

 

우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패턴에 부합하는 새로운 데이터를 원한다. 우리가 구축한 내부 모델을 갈아 엎어야 할 정도의 새로운 경험은 선호하지 않는다. 언제나 뇌는 학습하고자 한다. 학습 욕구는 궁극적으로 내가 무언가에 통달했다는 쾌감을 얻기 위해서다. 어쩌면 진정한 학습은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새롭게 자기 내부 모델을 갱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으로 패턴을 엎어야 하기 때문에 통달했다는 감각에 반한다. 뇌는 이것을 싫어한다. 뇌가 원하는 것은 익힌 패턴을 가지고 새로운 데이터를 마주하며 얻는 통달의 쾌감이다.

 

왜 어떤 게임은 지루한지 그 원인을 여기서 추론할 수 있다. 사용자가 게임 시스템의 패턴을 학습해 통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습 욕구의 근원적인 목적인, "통달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이 기분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게임은 지루해진다.

 

따라서 지나친 무질서는 괴롭다. 아무런 패턴조차 발견하기 힘들어 내부 모델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최소한의 통달에도 실패하면 그 게임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쉬워서 보자마자 통달했다는 감각을 느낀 뒤 더 이상 같은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게임도 있다. 너무 쉬운 것이다. 양극단의 감각은 사실 하나의 원리로 수렴한다. 즉, 학습 욕구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친 무질서나 지나친 질서나 모두 똑같다. 두 감각 모두 연습해서 패턴을 학습하고, 학습한 것을 토대로 자신이 게임의 질서를 파악했다는 통달의 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젤다의 전설

 

간혹 젤다의 전설과 같은, 오픈월드 게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틀린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게임이 재미 없어서도 아니다. 젤다의 전설의 게임 디자인은 그야말로 전설이다. 다만 특정 게이머들에겐 완전한 자유도는 지나친 무질서로 보일 수도 있다. 통달했다는 기분을 너무 거칠게 학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 게임이 시작하고 도대체 뭘 해야할지 모른다는 것은 "~을 하면 될 것이다"라는 추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이 추론이 불가능한 이유는 게임이 첫 화면에서 기초적인 패턴을 학습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들에겐 너그러운 튜토리얼이 필요하다.

 

반대로 아주 직관적이고 너그럽게 패턴을 학습시키는 게임도 있다. 고전 게임인 <슈퍼마리오>다.

 

슈퍼마리오 첫 시작 화면

 

마찬가지로 고전 슈퍼마리오에는 그 어떤 튜토리얼도 없다. 패턴 학습이 불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아주 간단하게나마 내면에 모델을 만들어내게 할 정도로 충분히 질서가 있는 게임이다. 오픈월드 게임과는 달리 지나치게 무질서하진 않다. 슈퍼마리오 디자인은 아주 매력적이고 교묘한데, 몇 가지 요소를 보자.

 

  1. 주인공이 중심에 있지 않고 왼쪽에 있다.
  2. 주인공이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모자와 수염으로 알 수 있다)
  3. 중앙이 뻥 뚫려있다. 휑하다.
  4. 그러나 주인공이 있는 왼쪽은 산이 있어 꽉 막힌 기분이다.

 

횡스크롤 게임을 처음하는 어린이라도 게임 화면을 보자마자 기초 패턴을 추측해낼 수 있다. 바로 "오른쪽으로 가볼까?"이다. 놀라운 디자인이 아닌가..!! 아이는 주인공을 오른쪽으로 움직일 것이고, 오른쪽 경계에 다다르면 새로운 화면으로 전환되어 몬스터를 만나게 된다. 첫 통달의 쾌감이다!! 오른쪽으로 향해 가기라는 게임의 기본 패턴을 학습한 것이다.

 

라프 코스터의 다음 말을 보자.

 

 

게임은 선생님이다. 재미는 그저 학습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게임은 에듀테인먼트다.
(p.066)

 

1-5. 게임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사실 게임이 학습 기제라고 해도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설령 게임이 학습 욕구를 사용해 재미를 주는 것이라고 해도, 그 학습하는 내용이 고작 "오른쪽으로 가기" 수준이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 시간에 조금 더 중요한 현실을 배우는 것이 낫지 않은가! 

 

게임은 현대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한 산업이다. 그럼에도 많은 성인들은 위와 같이 게임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게임을 멀리한다. 쓸데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인간이 게임을 포기한 적은 없다고 말이다. 다만 표면적으로 디지털 게임을 멀리하는 것일 뿐이다. 어른들은 새로운 게임에 참여한다. 어른들 주변에는 좋든 나쁘든 게임으로 가득하다. 연애도 일종의 역할 놀이다.(본인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일도 게임이다. (물론 재밌진 않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게임이다.(물론 때론 불쾌할 수도 있지만..) 이 논리를 더 확장하면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 개념이 나온다.

 

현대 게임이 화려한 그래픽으로 치장해도 파워업, 권력, 확장, 사냥, 수집 등을 다룬다.

 

결국 무엇을 학습하는가가 중요하다. 모두가 사실은 놀이를 즐긴다. 거기서 학습 욕구를 채운다. 그러나 우리가 어른이 되어 게임을 멀리하는 이유는, 사회적 압박도 물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디지털 게임 대부분이 너무나 기초적인 학습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원시 사회의 생존 기술이다.

 

모든 게임이 부족 원숭이가 되는 방법, 또는 부족의 우두머리가 되는 방법을 가르친다.
우리는 한물 간 기술을 배우고 있다.
(p.074 ~ 080)

 

그러나 게임의 학습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삶에 필요한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거기서 재미를 느낀다. 따라서 현대인에 맞게 게임을 개량할 필요가 있다. 게임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많은 상황을 모형으로 만들 수 있다. 매우 힘든 일이다. 오늘날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줄 수 있도록 게임이 발전해야 한다.

 

 

현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좀 더 뛰어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p.088)

 

퐁 게임에서 최신 테니스 게임으로의 발전이 과연 큰 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게임의 역사라고 해봤자, 그 밑에 깔린 학습 내용이 아니라 콘텐츠만 변화해온 것라고 말한다.

 

더 많은 게임이 돌 던지기나 탄도 궤적을 추적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거나, 또는 체결하지 않을 때 원유 가격이 상승할지 아닐지 같은 것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p.092)

 

나는 라프코스터의 말에 대해 공감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에 대부분 코웃음을 칠 것이다. 게임으로 학습을 시키겠다니? 아무리 게임의 본질이 학습 기제에 있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해 라고 말이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인기 많은 게임은 대부분 본능에 호소한다. 사람들은 생각 없이 하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논리와 의식적 훈련이 필요한 게임은 싫어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게임의 진정한 발전이란 콘텐츠(그래픽)이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3차원으로 이동한다는 기본 골격을 가지고 여러 콘텐츠를 만들어봤자 그것은 발전이라하기 곤란하다. 물론 게임의 배경과 무대 또한 혁신이 많았지만 디자인과 게임은 다소 분리할 필요가 있다. 위쳐3와 GTA5가 정말 다른 게임인가? 이 게임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이야기는 강력한 감성 경험을 제공할 뿐, 이야기 매체로서의 게임은 소설과 영화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

 

감동적인 이야기로 유명한 <To The Moon> 또한 이게 게임이 맞는지 의문이 많았다.

 

사실 게임이 제공하는 이야기가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게임 시스템적 혁신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게임이 여전히 원시 시대의 기술 (권력 다툼, 파워업, 사냥, 수집, ...)을 가르치기 때문에 게임 속 이야기는 매우 원초적이다. 현대 문학과 영화 매체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게임이 제공하는 가치는 이야기가 제공하는 감정적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바로 숙달, 통달의 쾌감이다. 게임은 이야기가 아니다.

 

 

2. 동기부여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내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있어 전혀 제한이 없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물론 지금 내 실력은 혼자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먼 미래의 일일지도 모르지만 상상은 자유가 아닌가. 컴퓨팅 자원이나 시간적 제한 모두 없다면 나는 세상에 대한 모형을 만들고 싶다.

 

세상을 그대로 본떠 오픈 월드 게임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오픈 월드는 그 자체로 게임이 될 수 없다. 오픈 월드 게임이란 말 자체가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마치 자유도를 많이 줘서 게임 속 세상이 현실 속 세상과 비슷해지면 정말 재밌을 거라고 말이다. ("메타버스"를 떠올렸다면 정답이다. 나는 메타버스 이슈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메타버스는 게임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라프 코스터가 말했듯, 게임은 세상을 본뜨는 것이 아니다. 가르치고 싶은 어떤 시스템이다. 그것을 뇌가 먹기 좋게 청크 단위로 잘라서 즐거운 경험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게임 개발자의 숙명이다. 오픈 월드에서 논다는 개념은 그저 가상 세계로의 여행일 뿐, 게임이 아니다.

 

capitalism lab

 

지금은 경제 모형 개발에 관심이 더 많이 간다. 내가 경제학과를 나온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를 못 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경제학에 더 애정이 간다.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키울 수 있는 멋진 경제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경영 타이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게임 산업의 주류는 아니라 게임 개발에서 이미 눈을 돌렸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경제 모형을 개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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